아이들을 영국 초등학교에 보내보니 꽤 자주 학교 밖으로 체험학습을 가더라구요. 큰 애의 경우 3학년 때는 매주 한번씩 아이스링크로 스케이트 수업을 받으러 갔고, 4학년이 돼서는 매주 수영장에 가요. 이건 고정적으로 가는 거고, 그 외 동네 도서관이라든가, 근교 박물관에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학교 밖으로 나갈 때마다 학부모 신청을 받아서 함께 가요. 아무래도 아이들 안전 문제 때문에, 자원하는 학부모가 없으면 선생님이 따로 연락해서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시더라구요.
지난주에 큰 아이 반에서 근처에 있는 힌두교 사원에 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저는 스쿨 트립 따라가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가 싫어해서 잘 못 갔거든요ㅜㅜ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엄마가 오고 싶으면 와도 돼"라고 쿨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수영 수업은 절대 못 오게 하면서 이건 왜 괜찮냐고 물어보니, "수영은 진짜 엄마가 할 일이 없단 말이야. 그냥 핸드폰 보거나 선생님이랑 얘기만 하다가 간다고."라고 하네요. 아이도 나름대로 기준이 있나 봅니다.
아무튼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힌두교 사원에 가봤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45~50분 정도 걸어 갔어요. 4학년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나이로는 아직 2~3학년 아이들이라 사소한 것에도 신나서 쫑알쫑알 대면서 가는게 귀엽더라구요. 몇 번 스쿨 트립을 따라가면서 느낀건데 남자아이들은 아빠 얘기를 엄청 많이 해요. 별거 아닌 것도 "우리 아빠 이거 할 수 있어요", "우리 아빠가 나랑 이런 거 했어요" 등등. 원래 남자아이들은 이런가요? 저희 집은 낯선 사람한테 인사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하는 수줍음쟁이 여자아이 둘만 살다 보니 신기했어요.
아이들이 힘들다, 목마르다 징징거리길래 사원을 다 보고난 후에 이 길을 다시 걸어서 돌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상냥하게 주지시키고 있노라니 주택가 한가운데 사원이 두둥!! 나타났습니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습이요.

주택을 개조해서 입구만 사원 모양으로 붙여놨습니다. 저 문이 열리긴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희는 옆에 있는 평범한 주택 대문으로 들어갔어요. 신발을 벗고 사원 내부로 들어가니 규모가 크지 않은 홀에 여러 신상들이 둘러져 있습니다.



힌두교는 하나로 정리된 교리가 명확하지 않고, 신의 종류도 워낙 다양하다고 해요. 사원을 소개해 주는 분이 "신은 모두 하나이고, 다만 다양한 형상과 이름을 가진 것뿐입니다(There's only one God. It has different shapes and names.)"이라고 하던데, 대충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브라만이라는 유일신이 있고, 이 신이 브라마(creator), 비슈뉴(presever), 시바(destroyer)로 나타나고, 그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 같네요.
구석에는 태양과 행성들을 조각해 놓은 공간이 있는데, 행성의 방향이 인간의 삶과 영향이 있다고 믿어서 행성이 항상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10월이 힌두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달이라고 해요. 저희가 사원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두 가족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 의식을 받고 가더라구요. 위 사진에서 상의를 노출하고 계시는 분이 아이들을 축복해주시고는, 의식이 끝나면 옆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 같은 곳으로 가서 현금을 받고 영수증을 발급해줍니다.
사원에서 질문이 있으면 해보라기에 축복 의식은 얼마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이들 수업 차원에서 온 것이기에 참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무슨 수업인고 하니, 바로 종교 교육(Religion Education)입니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종교 교육이 의무이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에 대해서 배워요. 이번 학기에는 Enquiry 주제도 "How do our beliefs shape us?"이기도 하구요.
저녁에 아이에게 카스트 제도는 배웠냐고 하니까, 모른다는 거예요. 오래전에 읽은 책 중에 레티샤 콜롱바니의 <세 갈래 길>에서 불가촉천민 여성의 삶이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왜 학교에서 종교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는가, 혼자 흥분해서 카스트 제도에 대해 막 얘기해주었는데 아이는 뭐, 심드렁합니다.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종교 교육이란 여러 문화가 뒤섞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갈등을 피해보고자 하는, 서로에 대한 정말 최소한의 이해 교육 차원이겠구나 싶더라구요. 오죽하면 아직도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국교로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 교육을 하게 됐을까 싶기도 하구요. 예전에 프랑스에서 일할 때 별 생각 없이 동료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니 무척 친절하게 나는 내 종교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지 않고, 그런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해주던 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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