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꼬마들은 성이나 성당 구경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저는 워낙 그런 곳들을 좋아해서 한 번 가면 최소 반나절 이상 있으면서 구석구석 구경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역시 유럽은 성과 성당!! 하이라이트는 중세!! 이런 마음인데...... 꼬마들은 들어서면서부터 출구를 찾는 수준이랄까요.
저는 특히 성 중에서도 거대하고 차갑고 어두운.... Fortress castle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들판 어디에선가 기사와 마법사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탑 꼭대기 다락방에는 순수 혈통인 왕자가 갇혀 있고, 높은 천장의 서재를 가득 채운 책장 구석에는 비밀문서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단 말이죠.(웃음)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건 중세 성이 아니라 톨킨님께서 기초를 쌓고, 조앤 롤링이 현대화를 시키고, 한국의 수많은 작가들이 변주를 만들어 낸 판타지 세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성은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과 런던탑(Tower of London)이에요.
오늘 다녀온 워릭셔에 위치한 워릭 성(Warwick Castle)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에게 최적화된 중세 성이 아니었나 싶어요. 성을 좋아하는 엄마와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아이들 모두 즐겁게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워릭 성은 원래는 11세기 윌리엄 1세가 에이븐 강(River Avon) 근처 요새가 있던 자리에 지어서 워릭 백작에서 하사한 성(정확하게는 하사 받은 사람이 제1대 워릭 백작이 된 거지요)으로, 당초 나무로 지어졌다가 12세기 돌로 개축했다고 합니다. 1970년대 후반 민간 기업이 인수해서 현재는 멀린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간 회사가 운영하는 만큼 입장료가 극악합니다ㅜㅜ
토요일이라 다른 날에 비해 조금 더 비싸긴 한데 4명 입장료가 116파운드(약 18만원)!! 당일에 표를 구매하면 더 비쌉니다. 하루 전 예약이 필수예요.
연간 이용권이 1인당 45파운드(약 7만원)라서 2번 이상 가실거면 무조건 연간 이용권을 사는 게 좋구요. 멀린 패스를 가지고 계신 경우에도 무료입장입니다.
워릭 성은 규모가 크진 않은데 아이들이 할게 무궁무진해요.
중세 성은 배경이고, 작은 테마파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저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건 드래곤 Zog 퀘스트입니다.
Zog는 그루팔로(Gruffalo) 시리즈로 유명한 줄리아 도널드슨의 그림책 주인공인 드래곤인데요. 아이들 놀이터를 Zog 테마로 꾸며놓고, 성 곳곳을 다니면서 Zog 스탬프를 찍고 마지막에는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가 하는 짧은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10분 정도 간단한 게임을 같이 하는 건데, 이걸 다 하면 작은 배지를 줍니다.
(처음에 골든 스타를 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기대했다가 작은 플라스틱 배지라서 실망했네요. 기념품샵에 딱 갖고 싶어 하는 골든 스타 메달이 있어서 사달라는 걸 간신히 말리고, Zog 동화책만 사서 왔어요.)
여기에 Zog 연극(Zog Live Show)도 해줘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The Falconer's Quest라고 이름 붙여진 다양한 새 공연도 멋졌어요.
대충 설명으로는 부엉이(owl), 참수리(sea eagle), 매(harris hawk), 콘도르(andean condor), 독수리(vulture), 흰머리수리(bald eagle), 이런 새들이 나온 것 같아요. 들리는 대로 기억해뒀다 집에 와서 찾아봤는데 부엉이와 매 빼고는 다 독수리인 듯요. 예를 들어 vulture로 검색해보니 뜻이 '독수리, 콘도르'라고 나오네요. 비슷비슷한 애들이었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고 멋진 새들이 조련사 지시에 따라 관객들 가까이를 휙- 날아다니니 넋을 잃고 봤네요. 한 번은 너무 가까이로 날아와서 부딪히는 줄 알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막상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 내부 구경은 지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혼내서(;;) 마지막에 간신히 훑어만 보고 나왔습니다.
중세시대 기사들 갑옷이랑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방마다 컨셉에 맞춰 밀랍인형들을 만들어 두었더라구요.




아이들이 피곤하다고 빨리 가자고 난리라 성벽 걷기도 못했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놀이터로 뛰어가는 거 있죠?
아이들과의 여행은 타협과 협상의 무한반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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